△ 정현구 지휘자

맨 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내가 나고 자라온, 지금도 살고 있는, 그러니까 고향 남양주. 서울에서 불과 30분 내에 진입할 수 있는 수도권의 핵심이지만 음악문화는 불모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변변한 공연시설은 물론 시립합창단 외에는 연주단체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몇 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 지휘를 경험하면서 남양주에도 언젠가 전문적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질 것이란 생각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언제라도 해야 한다면, 이왕 할 것이라면, 내가, 지금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쳇말로 맨 당에 헤딩한다는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2011년 7월 결행의 날이 온 것입니다. 우선 중·고등학교 선배인 김익경씨를 만나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연습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시청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협조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번번이 문전 박대.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공무원은 아직 정식적인 실체가 없는 유령단체에겐 장소를 협조할 수 없다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왜 없는 일을 사서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힘든 길을 왜 하려 하느냐며 만류하시기도 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도 간판을 내리는 판에 왜 또 오케스트라를 만드느냐며 하나같이 부정적인 말만했습니다. 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10여년은 고생해야 하는데 라며 걱정 어린 충고를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모르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고 젊음의 힘이 가만 두지를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4명의 단원으로 일단 문화원과 예총의 협조를 얻어 열악하지만 예총전시실에서 휴관일인 월요일에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술전시 공간인 관계로 울림이 너무 심하여 연습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새마을지회 강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 행사가 없는 월, 목요일 주2회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출발시키긴 했지만 부족한 단원, 재정적인 문제 등 누구하나 반겨주지 않는 현실... 암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창단 공연 예정일은 11월 19일, 이런저런 경로로 창단 소식을 접한 연주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10월 중순까지 부족한 단원들은 확보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창단 공연에 1,000명 청중 자리 없어 돌아가기도

그러나 산 너머 산이라고 연주할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남양주에는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체육문화센터뿐인데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 남양주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진접’이란 곳에서 창단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진 곳이라 관객이 오지 않을까 염려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1,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찾아 오셨고, 미쳐 입장하지 못 한 분들은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클래식 문화에 얼마나 목이 말랐는가,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단원들과 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된다는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날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전 악장을 연주했는데 이는 남양주시가 탄생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서울이 아닌 남양주에서도 전 악장 연주를 들을 수 있어 기쁘다며 격려해 주실 땐 정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변변한 후원하나 없이 단원들의 열정만으로 치룬 창단연주를 마치고 나니, 다시금 연습장소가 문제였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사능교회 목사님께서 ‘사능비젼센터’에서 연습실과 사무실을 내어주어 현재까지 이곳에서 연습과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올 해에 2월과 7월에 2회의 ‘정기연주회’와 2회의 ‘앙상블연주회’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연주를 했습니다. 이제 오는 8월 18일에 ‘제1회 남양주심포니 콩쿠르 위너콘써트’와 10월 ‘제4회 정기연주회’를 위해 50여명의 단원(전원 전공자, 수석급 단원은 해외유학파)들이 주2회 연습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는 2013년에는 연 4회의 정기연주회와 ‘시민을 위한 찾아가는 연주회’ 등 30여회의 기획연주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각들, 열악한 재정은 우리의 최대 당면 과제입니다. 매일같이 여러 방면의 사람들을 만나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를 알리고 후원 및 협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도 열정 하나로 뭉쳐 열심히 연습과 연주에 임하고 있는 우리 단원들을 위해, 그리고 안정적 연주회를 위해 몇 가지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선, 소액후원회원 1, 000명 확보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재정 자립도를 확보하고 관객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연주무대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재정안정을 위해 ‘이탈리안 카페’를 개점하여 수익금 전액을 오케스트라를 위해 투자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남양주지역을 10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청소년 오케스트라’ ‘아마추어 합창단’을 만들어 음악 문화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자 합니다. 이들 각 연주단체를 1년에 1회 연합하여 ‘시민 음악페스티벌’을 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양주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학술적으로 부각시켜 여기에 음악문화를 접목시키는 작업도 연내에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천군만마 평론가협회의 후원을 받는 단체로

이러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려면 혼자의 힘으론 역부족인 바 음악계의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분의 조언을 구하고자 하던 중 제가 음악교육신문 기자 시절에 평론을 맡아주시고 도움을 주셨던 음악평론가 탁계석 선생님이 생각났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카톡으로 보내드린 포스터를 보시고 얼굴을 보자며 문자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자리에서 시민오케스트라 운영에 대한 자료도 주시고, 오케스트라 자립을 위한 다양한 조언을 해 주시니 그 고마움이란 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시민오케스트라에 관한 자료는 제가 고민하던 많은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탁선생님께서 주신 자료와 조언해 주신 다양한 방법들을 적절히 연결하여 ‘남양주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35도를 넘는 폭염 속에 양평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을 하면서 선생님이 뒤에서 돕겠다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음악회에 꼭 가보겠다는 말씀 하나로 소나기를 맞은 듯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남양주 오케스트라가 시민의 뜨거운 사랑속에 피어나는 날을 위해 오늘도 아침부터 밤까지 뛰려고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