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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코리안 문단] 돼지 잡는 날
2017년 09월 09일 (토) 09:09:25 이복희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boghee0320@hanmail.net

   
▲ 이복희 수필가
매년 휴가철이면 기르던 돼지를 잡는다. 돼지한테는 야속하지만 우리 식구는 잔칫날 같이 들뜨고 흥분한다. 돼지를 살찌운 것에 한 몫을 했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더 높인다. 돼지저금통을 거실 한가운데로 내려놓는다. 집안이 꽉 찬 느낌이다.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것을 남편이 뒤집는다. 살아있는 돼지라면 ‘꽤액!’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고 난리를 부렸을 텐데 처러럭 쇳소리만 날뿐이다.

남편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마냥 신중하다. 대단한 의식이라도 참관하는 것처럼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식구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돼지의 배를 겨누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식구들의 숨소리가 들숨에서 멈춘다. 불현듯 어린 날 앞마당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돼지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유년 시절 기르던 돼지를 파는 날, 돼지의 고함소리에 집이 다 날아갈 듯했다. 온갖 음식찌꺼기를 먹어 치우며 무럭무럭 자란 돼지가 백 근이 족히 넘으면 아버지는 돼지 장수를 불렀다. 우리에서 마당으로 내몰린 돼지는 무슨 낌새를 챈 듯했다. 꿀꿀거리며 먹이를 찾던 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겁먹은 소리로 들렸다. 눈은 휘둥그레지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큰 콧구멍으로 연신 콧바람을 뿜어댔다.

돼지 장수는 노련했다. 그는 밧줄로 된 올가미로 돼지의 앞다리를 날렵하게 옭아맸다. 그는 옭아맨 밧줄을 힘껏 당겨 육중한 돼지를 단박에 뒤집어버렸다. 순식간에 앞다리를 밧줄로 꽁꽁 묶고 무릎으로 돼지의 배를 짓누른 다음 뒷다리마저 삽시간에 묶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무아지경에 빠진 그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내 몸도 바르르 떨렸다. 마치 내가 돼지처럼 꽁꽁 묶이는 것 같았다.

근수를 달아야했다. 움쩍달싹 못하는 돼지의 묶인 다리 사이에 굵고 긴 막대기를 끼웠다. 어른 두 분이 낑낑거리며 돼지를 매고 있는 사이에 돼지장수와 아버지는 돼지의 근수를 쟀다. 두 분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오가기도 했다. 근수의 차이에 따라 돼지의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달린 돼지는 눈을 치켜뜨고 죽어라고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생똥을 싸기도 했다. 돼지가 내는 온몸의 언어였다. 돼지가 팔려나가고 빈 우리를 볼 때마다 똥을 싸대며 발악을 하던 돼지의 치켜뜬 눈이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돼지와 바꾼 돈은 고스란히 우리 형제들의 학비가 되었으니 우리들은 돼지 장학생인 셈이다.

돼지저금통은 진통도 없이 수백 개의 동전을 출산한다. 식구들은 와르르 쏟아지는 동전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만 원권 지폐에서 십 원짜리 동전, 거기에다 외국 동전까지 거실바닥에 작은 오름이 생긴다. 드디어 과일을 선별하듯 동전을 분류한다. 아이들이 돈에 눈독을 들인다. 남편의 감시하는 눈길이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돼지저금통의 90%는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서로의 눈을 피해 엉덩이 밑으로 슬쩍 해보지만 금방 들통이 나고 만다.

“왜? 이 돈이 남의 엉덩이 밑에 있는 거야.”

아이들의 능청이 거실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든다. 스무 해를 거슬러 그와 내가 첫 돼지를 잡던 때가 떠오른다. 처녀총각 시절 처음으로 그의 집에 갔다. 둘이서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멀뚱히 있던 그가 책상위에 놓여있던 돼지저금통을 들고 왔다. ‘이 놈 한번 잡아보자.’ 괜히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돼지저금통으로 고정된 두 사람의 눈길에 묘한 감정이 돌았다. 방바닥에다 붉은 돼지를 뒤집어 놓고 칼로 배를 쭈욱 갈랐다. 돼지저금통이 쏟아낸 동전들 속으로 우리의 어색함이 묻혔다. 둘이서 동전을 분류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기만 해도 참 달콤했다.

돈 자루를 쥐고 함께 은행에 갔다. 지폐로 바꿔 나오면서 그가 느닷없이 금은방으로 향했다. 얼떨결에 나는 금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사양할 겨를도 없었다. 눈빛만 오갔을 뿐, 고맙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말도 못했다. 목걸이에 달린 자그마한 펜던트만 만지작거렸다.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 같았다.

그 후로 몇 마리째던가. 이 돈으로 뭘 한다지? 49만8천50원. 매년 돼지저금통을 잡아서는 아이들 저금통장으로 들어갔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통장으로만 들어간다고 불만을 토해낸다. ‘휴가비용으로 쓰자. 사람 수 대로 나누자. 휴가기간 내내 맛있는 외식을 하자.’ 각각 제 목청을 돋운다. 나는 애들 보기에 조금 부끄러웠지만 나에게만은 특별히 선물을 사달라고 아양을 부리듯 말했다.

“그때는 선물 줄 사람이 당신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네요.”

빈정대는 듯 들리지만 남편의 목소리에 행복이 가득 묻어났다. 나는 입은 삐죽거리면서도 눈가에 핀 웃음꽃은 감출 수가 없다. 그 돈은 늦둥이 막내의 저금통장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불만은 많았지만 다들 토를 달지 않는다. 그가 술을 한잔하고 온 날이면 가끔 큰애들에게 아빠가 나이 들어 경제력이 없으면 너희들이 막내를 책임져야 한다고 해왔다. 큰애들은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하냐고 반박을 하지만 조금은 이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돼지는 곧 돈이고 쓰임새는 다르지 않는 것 같다.

티끌모아 태산. 이항복 선생이 매일 쇳조각을 주워 모아 연장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에서 일컬어진 말이라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산처럼 거대해 진다는 것을 아이들의 불어나는 통장에서 실감한다. 요즈음은 거리에 십 원짜리이나 오십 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 집만 해도 동전이 책상 위나 서랍장 안, 싱크대 등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눈에 띄는 대로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집어넣는다.

마트에서 귀엽고 앙증맞은 돼지 세 마리를 사왔다. 아이들에게 이 녀석들을 통통하게 살 찌워보라고 할 참이다. 그는 동전을 출산한 돼지저금통을 실리콘으로 봉합해서 재사용한다. 그러는 그가 내심 든든하다. 돼지 잡는 날은 이십 년을 이어온 연례행사다. 어느새 우리 집 전통이 되었다. 돼지 잡는 날은 한 해 동안 키운 행복을 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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