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무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얼마 전 중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진단한 ‘차이나 리포트’(도서출판 한숲)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의 글을 소개한다.<편집자주>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베이징총영사)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에서 현지의 많은 유식자를 만나보면 과거 동일한 문화 코드가 변질되어 같은 어휘라도 나라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뭔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느끼게 한다. 수천 년 내려오면서 중국이 그려 놓은 무늬(紋)에 한국과 일본이 독창적으로 변형시킨 것이 오늘의 한중일 3국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선 정종(正宗)이라는 술만 해도 그렇다. 정종은 ‘마사무네’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니혼슈(日本酒) 브랜드이지만, 중국어로는 원조(元祖)라는 뜻이 있는 보통 명사(또는 형용사)이다. 중국식당 간판에 정종의 표기가 흔히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도시대 일본 고베의 롯코산(六甲山) 근처에서 새로운 술을 만든 사람이 한자(漢字) 브랜드를 얻기 위해 사찰을 찾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스님들이 한자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날따라 정작 스님을 만날 수 없어 스님 앞에 놓인 책 제목으로 보이는 ‘정종(正宗)’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새로운 술을 만든 사람은 해는 저물고 스님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정종’ 글자를 그대로 외워 와서 새로운 술의 상표를 정했다. 이것이 ‘정종’의 유래라고 한다. 스님 앞에 놓인 책은 중국에서 건너 온 ‘정종 조동종(正宗 曹洞宗)’이라는 불교 서적이었다.

도쿄의 우에노(上野)에 홍고(本鄕)라는 지명이 있다. 도쿄 대학이 소재하는 학문의 중심지다. 그 유래가 중국과 관련이 있다. 이곳의 지명은 ‘창평향(昌平鄕)’이었고, 홍고는 창평향의 중심거리였다. 창평향은 중국 산둥성 공자가 태어난 곳으로, 취푸(曲阜)의 한 지역이다. 중국의 창평향이 도쿄에 붙여진 것이다. 일본 유학의 대가 하야시 라잔(林羅山)은 이곳에 공자를 모시고 이름도 공자의 고향 창평향을 그대로 따왔던 것이다.

황금과 옥의 문화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빛깔이 황금색이라 생각했다.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가 죽으면 태양의 빛깔인 황금 마스크를 씌워 사후 승천하도록 기원했다. 이집트의 황금 숭배 사상이 그리스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태양의 색을 백색으로 보았다. 한자의 백白이라는 글자는 태양(日)에 햇살이 비스듬하게 붙어 만들어진 글자다. 중국의 태극 음양을 보면 낮은 흰색, 밤은 검은색이다.

그리스 신화에 미다스 왕은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된다. 황금이 얼마나 좋으면 이러한 신화가 나왔을까 싶다. 그리스에서 전래된 황금이 귀하게 되니 스키타이 등 기마민족이 황금을 몸에 지니게 됐다. 기마민족 만주족이 세운 후금(淸)의 초대 황제는 누르하치 애신각라다.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주족 발음으로 아이신교로)의 본래 뜻은 황금이다.

청조가 망하고 공화국(民國)시대에 청조의 황족은 한자 성 김(金)씨로 바꾸었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신라의 왕족 김(金)씨의 성도 황금과 관련된다. 신라의 수도 경주의 고분에서 황금관이 많이 출토된 것도 신라인이 본래 황금을 좋아하는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이다.

반면에 한중일 3국은 옥을 귀하게 여긴다. 완벽(完璧)이라는 글자가 옥의 온전함을 이야기 하듯 중국이나 한국의 왕이 쓰는 면류관은 옥관이다. 옥이 달린 12줄은 황제의 옥관(帝冠)이고 9줄은 제후(왕)의 옥관(王冠)이다. 황제는 만세(萬歲)라고 부르고 왕은 천세(千歲)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고대 일본에서 황금은 장식용으로 사용됐다. 얇은 종이처럼 잘 늘어나는 황금의 성질을 이용하여 황금 종이로 가구며 집의 외벽을 장식했다. 교토의 금각사는 황금 종이로 입힌 건물로 오후가 되면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신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일본을 찾아 온 송나라 무역상들은 일본은 황금으로 집을 지을 정도의 황금이 풍부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만난 송나라 무역상으로부터 일본에는 황금이 돌처럼 굴러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견문록에 기록해 두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탐독한 콜럼버스가 배를 띄운 것은 황금의 나라 일본을 가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황금을 중요시하지 않고 옥을 중시했다는 것은 일본 천황이 귀하게 여기는 3종의 신기(神器)에서도 알 수 있다. 신기에는 황금은 없고 옥이 맨 먼저 나온다. 곡옥(曲玉, 굽은 옥)은 재력(富)을 상징한다. 다음으로 지식을 상징하는 거울(鏡), 그리고 공권력을 상징하는 칼(劍)이 천황의 3종 신기다.

피휘사상은 서로 달라

중국과 한국에서의 피휘 사상 중국의 황제나 성인(聖人) 공자의 이름(諱)을 기피하는 피휘(避諱) 제도가 한국에는 그대로 이어져 왔다.불교의 관세음보살이 당 태종 이세민의 이름을 피해 세(世)가 빠지면서 관음보살이 된다. 큰 언덕이라는 대구(大丘)가 공자의 이름자인 구(丘)를 피해 대구(大邱)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한반도에서 중국에 따라 경명(敬名)사상으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字)나 호(號)를 많이 사용했다. 조선 왕조 임금들의 이름에 어려운 글자가 쓰이거나 외자가 사용된 것은 피휘를 생각하여 백성들이 이름 짓는 데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에 일본은 조상이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자를 자신의 이름 속에 넣는 풍습이 있다.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이름자에는 그의 고향 야마구치(山口)의 위인(偉人)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의 이름자(晉)가 들어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