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지금은 좀 철 지난 얘기 같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때 ‘정영사(正英舍)’ 인맥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수위원회 인사들을 분석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파워인맥의 하나로 ‘정영사’ 인맥이 거론됐던 것이다.

정영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설립된 서울대 엘리트 기숙사의 이름이다. 1968년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 중 가운데 글자인 `정(正)'과 `영(英)'을 따 세워진 기숙사로, 서울대에서 단과대별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지방 학생을 4~5명씩 뽑아 학년별로 30~40명씩 수용했다. 이 기숙사 출신 일부는 나중에 '정영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어, 1년에 한 차례씩 청와대에 초대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정영사의 사례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도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구미 출신 대학생을 위한 서울 기숙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구미시와 구미시장학재단은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을 사들여 2014년부터 기숙사인 ‘구미학숙’으로 운영하고 있다. 건물 매입비와 리모델링 비용은 구미시가 20억원, LG디스플레이가 40억원을 부담했다. LG디스플레이는 구미지역 투자에 따라 받게 된 인센티브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기금을 냈다고 한다.

구미학숙 입사 신청자격은 구미시에 1년 이상 주소를 둔 관내 고등학교 졸업 혹은 예정자다. 선발기준은 학업성적 및 생활정도로 배점하며, 기초수급자와 국가유공자, 장애우 자녀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입사기간은 1년이며, 연간 5만원의 입사료와 월 15만원의 사용료만 부담하면 된다.

구미시가 기숙사를 만든 것은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구미지역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기숙사 방마다 침대, 책상, 옷장, 냉장고, 인터넷 전용회선을 갖췄고, 부대시설로 단체식당, 체력단련실, 세탁실, 독서실, 샤워실, 커뮤니티룸, 휴게공간도 마련돼 있다고 한다. 구미시는 ‘구미학숙’ 운영과 더불어 서초동에 있던 기존의 서울사무소도 기숙사로 옮겨 사무소 비용도 절감하고 지역 학생도 돕는, 꿩 먹고 알 먹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이러한 내용을 칼럼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한인사회도 한국에서 이 같은 기숙사를 만들어 운영해보면 어떨까 해서다. 해외한인사회 2세들 가운데 한국에 와서 유학을 하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에게 우리 말과 문화를 익히도록 부모들이 배려한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에 유학보낸 자녀들을 위해 정작 세계한인사회나 재외동포재단이 케어(care)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은 없다. 나아가 이들을 위한 공동의 기숙사를 만들거나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사례도 아직 없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이 낯선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정영사나 구미학숙처럼 한인2세들을 위한 전용기숙사가 있어서 일정기간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새로운 생활에 훨씬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때로는 기숙사가 마련한 역사문화탐방 등의 이벤트에 함께 참여하면서 네트워킹을 하도록 하면, 향후 해외에 돌아가서도 세계를 무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얼마전 제주에서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운영위원회에서 ‘한상 장학금’을 만들자는 논의를 지켜보면서 떠올려봤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