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부모를 찾는 설날인 2월8일에 아르헨티나 한인들은 경로잔치를 열었다. 일찍이 1980년대 초부터 호남향우회(회장 김상현)가 주최해 온 경로잔치가 올해 29회째를 맞았다. 이날 오후 6시, 460석의 해운대회관은 한인 어르신들과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한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준 현지인들로 가득 찼다.

이 행사에는 임만제 노인회장, 이병환 현 한인회장, 김관옥·최범철·이흥철씨 등 전임 한인회장들이 참석했다. 이학락 평통남미서부협의회장, 장영철 50주년이민사편찬위원장, 이학선 영남향우회장, 이강진 충청향우회장 등도 참여해 행사를 빛내주었다.
 

이 잔치에 현지 정치인, 전직 경찰 간부, ASIA TV 제작진, 초대 주아르헨티나한국대사관의 유일한 현지인 직원이었던 네리다오제로스(NelidaOlleros) 등 30여명의 현지인들도 참석하며 한인들의 경로잔치를 축하했다.

잔치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진행됐는데, 1부에서는 김상현 회장과 단체장들의 인사말이 있었고, 19대 호남향우회 박영희 회장, 김한창 태권도 사범, 김혜숙 전 민속국악원장에게 그동안 수고한 데 대한 공로패를 전달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해마다 전달하는 장수상을 올해는 이열(96세) 옹과 현길녀(96) 할머니에게 드렸다. 이어서 회원들은 어머니 은혜와 홀로 아리랑을 합창하며 노인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2부 행사에서는 성악과 임혜란 이진옥 여사의 가야금 연주와 장성희 민예단의 민속무용 등 공연이 있었다. 임만제 노인회장의 창부타령 등 노인들의 노래자랑도 있었으며, 행사 중 호남향우회는 추첨을 통해서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현지인들이 특히 감탄했고, 우리 노인들도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쉬운 점은 행사를 진행하는데 젊은 교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다는 것이었다. 노인잔치에 환갑이 지난 60대 향우들이 크고 작은 일을 맡아 수고를 해주었다. 400명 이상이 모인 교민들의 중요한 행사에 대사는 물론 공사나 총영사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장 젊은 영사가 참석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우리 문화의 중심인 설날의 경로행사에 대한 공관이 무관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민자들은, 특히 연로한 어른들은 한국의 명절에 고국과 고향 그리고 고국에 있는 친지들을 더욱 그리워한다. 아르헨티나의 경로잔치는 한인 인구가 많지 않았던 시기에 노인들의 수고에 보답하고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호남향우회가 맡아서 진행했던 행사다.

물론 초청 대상은 전체 한인 어르신이었고 때로는 주위의 현지인 노인들도 초대해 한국 문화를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향우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노인에 대한 경로사상도 엷어진 형편이다.

▲ 김상현 호남 향우회장이 오랫동안 한인을 도와준 현지인을 소개하고 있다.

호남향우회가 행사를 치르는 데 힘이 모자라서 호남향우회장 지원자가 없다는 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50년 전에 이민 와서 한인을 위한 일을 많이 했고, 아르헨티나 한인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상현 전 한인회장을 호남향우회 회장으로 옹립하고 금년에도 전통을 가진 경로잔치를 무리 없이 잘 치르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한인의 경로잔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행사를 한 향우회가 어렵게 주최하지 말고 전 교민을 관장하는 한인회 또는 영남·호남·충청향우회 등 합동향우회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떤 경우이든 젊은 층의 참석을 장려하여 우리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자들이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이 설날의 경로잔치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관이 더욱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