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덕재물(厚德載物)’은 덕을 두터이하여 만물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주역에 나오는 글귀로 북경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에 나오는 글귀로, 최고의 선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 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 글귀들을 담은 액자들을 본 것은 칭다오의 하덕만 한인회장 회사 집무실에서였다. 그의 회사는 칭다오 성양의 옥황령공업구에 있다. 한인들이 밀집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하 회장이 칭다오로 온 것은 2002년이라고 한다. 울산 인근 양산 출신인 그는 89년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슨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2년을 수학하고, 1992년 맨하탄에서 커스텀주얼리 수입유통업에 뛰어든다.

30세에 맨하탄 무역회사 사장이 된 그가 중국에 진출한 것은 2002년. 승부를 걸려면 유통보다는 제조업이라는 생각으로 10년간의 맨하탄 생활을 접고 중국 칭다오에 제조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현재 종업원수 200명에 매출은 연간 2000만달러. 주얼리업계의 한인기업 가운데서는 굴지의 규모다.

“초기에는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근래 인건비 상승 등 사업 환경이 극도로 어려워졌지만, 주얼리를 제조하기에는 아직 칭다오만한 곳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 회장은 “주얼리 제조에는 수만가지 부품이 들어간다”면서 “칭다오는 부품 공급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 진출한 주얼리 분야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라면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10%, 30~40%는 견딜만한 정도이고, 나머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면 성실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도 우리한테는 그러한 노력의 DNA가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 하덕만 신임 한국인회장(왼쪽)과 이영남 전임 회장.

하 회장은 조정래 소설 ‘정글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하경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소설 속 하경만의 스토리는 바로 하덕만 회장의 실화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조정래 소설가를 알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칭다오로 찾아오셨더군요. 소설을 준비한다고요. 저랑 앉아서 한자리에서 6시간이나 얘기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또 오셔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조정래 소설가가 하 회장의 얘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했을 때 그는 대박만 내시라면서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한국에 갈 때마다 조정래 소설가로부터 비빔밥을 대접받는 것은 그 덕분이다.

하 회장을 만나기 전 장종윤 전 교주한인회장으로부터 간략한 이력을 넘겨받은 게 있었다. 하 회장이 칭다오한인회장으로 출마할 때 낸 이력서였다. 길지 않은 그의 이력서에는 중국 정부로부터 받은 수상기록이 이어져 있었다.

“2009년 청도시 성양구 명예시민상, 청도시 자선상, 2011년 청도시 10대 사랑자선기증 외국투자기업상, 2012년 청도시 성양구 자선스타상….”

이에 대해 그는 2005년 이래 매달 현지 지방정부에 기부해온 것이 알려져서 받은 것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다달이 6,000위안(100만원 상당)씩 기부한 것이 만 10년이 넘었다는 것. 연말이면 중국홍십자사에 따로 큰 액수의 기부금도 낸다고 한다.

나아가 고향인 양산의 학교들에도 기부를 계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양산 중고교에 매월 150만원씩 장학금을 낸다는 것. 올해부터는 양산초등학교에도 기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하 회장은 “고향의 학교들에 기부해오는 일들은 지난 5년간 비밀로 진행됐는데, 학교에서 우연히 노출시켜서 신문에 실리게까지 됐다”고 계면쩍어 했다.

“한인회장으로 일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기부와 봉사의 마음으로 출마했습니다. 한인회장직을 맡은 이상 칭다오 한인사회가 더욱 모범적인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머리 뒤쪽으로 ‘후덕재물’과 ‘상선약수’라고 쓴 두 액자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