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일본역사서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記),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실린 왕인박사에대한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5대 천황인 오진(応神)천황이 백제국에 만약 현인이 있다면 보내달라고 청했다. 백제왕은 왕인을 추천했다. 일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초청해 왔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재위 16년 봄 2월의 일이다. ··· 태자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전적(典籍)을 배웠는데, 왕인은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동아일보 2015.6.17.10면)

이러한 일본 고대 역사서의 기록들은 왕인이 당시 얼마나 큰 학자였으며,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왕인은 4, 5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대 일본에 백제문화, 나아가 선진적 한반도 문화를 전한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백제에서도 박사(博士)칭호를 받은 당대 석학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문자를 만들어주고 학문을 가르치고 도자기, 기와 기술까지 전해줬다.

751년 편찬된 일본 최초의 한시집 가이후소(懷風藻)에서는 “왕인은 왜어의 특질을 훼손하지 않고서 한자를 이용해 왜어를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표현해 그가 일본문자 가나(假名)를 창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서수(書首)와 문수(文首)의 시조라고 적고 있다. 즉 책과 글을 다루는 직책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는 또 고대 일본귀족들이 짓거나 암송했던 전통의 정형시 와카(和歌)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905년에 발간된 노래집 ‘고긴와카슈(古今和歌集))’는 “난파진에는, 피는구나 이 꽃이, 겨울잠 자고. 지금은 봄이라고, 피는구나. 이 꽃이”라는 내용의 난파진가를 소개하면서 왕인 박사가 지은 최초의 와카라며 왕인을 와카의 아버지라고 적고 있다.

일본에 대한 문화의 전수와 기여는 그의 당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일본 조정에서 문필과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계에서 생활불교를 펴서 민중의 구제자로 일본인들이 흠모하는 교기(行基 668~749)스님도 왕인 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왕인의 가문 전체가 일본문화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고대 일본에 한류를 전하고 불러 일으킨 최초의 사람이 왕인 박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도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한문을 전하고 문자를 만들며 문화를 진흥시킨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왕인 박사의 공적을 기려, 곳곳에 그를 받드는 신사(神社)를 만들고 비를 세웠다.

왕인 박사의 묘는 오사카 하라카타(枚方)시에 있는데, 묘 앞에는 백제문(百濟門)이라는 한국식 전통 대문이 있다. 과연 왕인 박사는 일본 왕실의 사부로 학문과 경사(經史)를 전수, 일본문화의 원류인 아스카 문화의 시조로 일본인들의 존경과 기림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왕인 박사에 대한 연구는 아직은 미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