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30분, 「마피아는 여름에만 살인을 한다」(La Mafia Uccide Solo D’Este, 2013, 감독: Pif)라는 영화가 끝났다. 마피아와의 전쟁을 배경으로 소년의 성장과 사랑을 다뤘다. 영화가 끝나자 광장에 모인 4000 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로서 그 감동을 표현한다.

｢영화의 별빛 아래」(Sotto le stelle del cinema)라는 볼로냐 영화 축제의 50일 가운데 제 20일 째 밤이다. 오늘은 밤 11시30분으로 일찍 끝난 편이다. 보통은 자정이나 자정 넘어 끝난다. 낮에는 38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이지만 볼로냐 대광장의 밤은 시원하다.

대광장 가운데에는 1000여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정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야외 영화관 한쪽에는 볼로냐 시민들이 세계 최대의 성당으로 짓고자 했던 싼 뻬뜨로니오(San Petronio) 바실리카가 있다.

의자에 못 앉는 사람들은 바실리카의 계단까지 빽빽이 들어앉는다. 그 외의 빈 공간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메워 대량 4000 여 명 정도의 시민들이 밤 하늘 별을 보면서 영화를 관람한다. 이 영화제는 6월21일부터 8월15일까지 거의 두 달 간 진행된다.

볼로냐 씨네떼까(Cineteca)라는 전문기관이 에밀리아-로마냐(Emilia Romagna) 정부, 민간재단, 협동조합 기업 등의 후원을 받아 무료로 공연한다. 시내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산책 삼아 광장으로 모여들고 좀 멀리 사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광장에 온다.

캐주얼하면서도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들, 시원하게 스포티하게 입은 청년들, 은은하게 차려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소년, 소녀들, 볼로냐에 여행 왔다가 공짜 영화라는 대박을 만난 외국인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영화 스크린이 보이는 세 개 야외 레스토랑은 일찍부터 만원이다.

글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시네마 천국이다. 볼로냐 시민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려면 아무 영화나 상영해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박물관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볼로냐와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세계적 영화감독들이 배출되었고 또 영화 거장들이 이 지역에서 명작들을 제작했다. 이 점을 보여주는 전시가 대광장 옆의 아꾸르지오 궁(Palazzo d’Acursio)에서 같은 기간에 개최됐다. 「에밀리아-로마냐, 영화 제작자들의 땅」이라는 전시이다. 이 전시를 보면, 에밀리아-로마냐 주 그리고 그 수도인 볼로냐가 이탈리아 영화사, 나아가 세계 영화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 이 영화 축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도 세계적 작품들 가운데 선택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1915년에 태어난 세계적 영화인들의 영화를 집중 상영한다. 마리오 모니첼로(Mario Monicelli, 1915-2010), 올슨 웰즈(Orson Welles, 1915-1985), 잉그리드 버그만( Ingrid Bergman, 1915-1982) 등의 영화다.

마리오 모니첼리의 영화 6편, 올슨 웰즈의 영화 8편, 잉그리드 버거만이 등장한 영화 6편 등이 상영된다. 이들의 고전 영화 뿐 아니라 그래비티(Gravity, 2013)과 같은 현대 영화도 상영한다.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을 일깨우는 ‘네, 할 수 있습니다’(Si Puo Fare, 2008. ‘위캔두댓’으로 번역되었음)라는 협동조합 영화도 상영된다.

시민들이 심야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볼로냐가 부럽다. 영화도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수준작들이다. 그 영화제를 거의 두 달이나 한다는 것도 놀랍다.

더욱이 이 축제를 시민들 누구나 쉽게 마실 다니듯이 올 수 있는 대광장에서 한다는 게 부럽다. 이탈리아어로 삐아짜 마조레(Piazza Maggiore)라고 불리는 이 광장이 왜 볼로냐의 상징이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지 알겠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