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척척스토리

국민학교 6학년.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에 나간 적이 있었다. 꽤나 과열된 선거분위기였다. 선거운동원이 필요한데 그게 모두 돈이다 보니, 세살 위의 형과 단둘이서 뛰어보기로 했다. 형은 그 당시 붓글씨를 제법 휘둘렀기에 우리형제는 몇날 며칠 동안 한지에 붓글씨로 '기호6번 김전한' 이라는 선거포스터를 제작하였다.

학교 벽에 붙여두면 누군가가 떼어내고, 찢어놓고. 형제는 밤이 되면 지치지도 않고 다시 학교로 가서 그 포스터를 붙였다. 형제는 선거 전략을 짜고 포스터 붙이고. 그야말로 열심히 발로 뛰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패였다. 그때는 간접선거였다. 4.5.6학년 반장 부반장들만 모여서 하는 체육관 선거였다. (그 선거인단은 대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당선된 녀석은 그 당시 최첨단 학용품인 샤프펜슬을 대의원들에게 돌렸다. 난 곧장 참패한 다른 녀석들을 불러 모았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부정선거다. 우리는 작전을 짰다. 월요일 운동장 전체 조회가 있을 때 내가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마이크를 잡겠다. 그러면 니들은 뒤에서 분위기 잡고....우짜고 저짜고 속닥속닥. 선거 운동할 때 보다 더한 짜릿한 전율이 타고 흘렀다.

그런데 아뿔싸! 비밀은 누설되고 나는 담임한테 반 협박과 반 구슬림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던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지 않은가. 학급반장으로서 그 임무나 잘 해 보라는 결론이었다. 유신의 후유증은 내게 그렇게 왔었다. 4학년 때 유신헌법이 공포되었고 그해 가을은 온통 유신헌법에 관한 수업이 주종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만화가 신동우화백이 그린 유신홍보전단지. 유신의 길 번영의 길. 유신 반대쪽 계곡 아래는 해골바가지가 뒹굴고있는 섬��한 그 그림들. 홍길동 때문에 내가 신동우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게다가 신동우 화백의 그 허여멀숙한 미남호남쾌남의 그 얼굴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선거권도 없는 아이들한테 까지 왜 그 교육을 시켰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다시 6학년으로 돌아와서 난 그해 내내 삐딱선으로만 나갔다. 일테면 도내 과학경연대회가 있어서 각반에서 차출된 대표선수들끼리 수업 끝나면 과학실에서 뭔가를 연습했었다. 나는 대표선수들을 살살 꼬셔서 동촌유원지로 놀러갔다. 학교 망쳐먹을 놈이라고 직싸게 터졌던 기억이 있다. 흥분한 담임은 아이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셨다. 그때 도덕지수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넌 말이다 지능지수는 높은데 도덕 지수라는게 아주 빵점이야 너 같은 아이는 자라서 필시 범죄자가 될거야. 내 장담을 한다. 이놈이 어떤 인간이 될건지 니들이 나중에 똑똑히 보아라. 아주 질 나쁜 범죄자 될 놈이야 이놈은”

나는 속으로 피실피실 웃고있었다.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좆까! 씨팔놈아!’ 쯤을 중얼거렸던거 같다. 가끔 나는 자책을 하곤 한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과 함께 그 시절을 건너왔는데 왜 나만 이런 지랄같은 기억들만 가득 쌓여있는지 공부도 제법 하는 아이였는데 왜 하필 나만 그렇게 죽도록 매 맞았던 기억이 많은지.

편집자주) 본지 특별연재작인 '칠번국도 아이' 가 미국 웹툰 사이트인 타파스틱(www. tapastic.com)에 'The kid of the route 7'란 이름으로 영문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