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지난해 후쿠오카한국총영사관이 실시한 ‘큐슈 속의 한국 여행기’ 공모전에서 한국어 우수작을 받은 작품이다. 총영사관은 최근 이글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원 제목은 ‘카라쿠니타케, 또 다른 나의 고향 미야자키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다’이다.

작자 이동준씨는 2008년 미야자키에서 일본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회사동료로부터 미야자키 한국악 정상에 오르면 한국이 보인다는 얘길 들었다. 미야자키에서 한국과의 거리는 못해도 400km. “설마”하면서도 한국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산행을 감행한다.

평소 등산과는 담을 쌓았던 터라 죽을 고생을 하고 산에 오르지만, 역시 한국이 보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원래 이곳은 백제의 유민들이 살았다는 설이 있다는 것이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던 그들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 큐슈 미야자키의 풍경과 재일동포들의 모국을 그리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해 본다. 다음은 '미야자키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다' 전문이다.

2008년 여름, 나는 미야자키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 했던 내가 어떻게 하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미스터리한 일이었지만, 회사 동료들 덕택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넘게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미야자키의 친구, 회사 동료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송년회 시즌이 되면 빠짐없이 내려가고 있으며, 미야자키는 또 다른 나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다.

2008년 겨울부터, 한국에서 골프 투어객들이 내가 일하던 골프장으로 방문하기 시작하였고, 매년 3,000명이 넘는 한국 사람들을 맞이하였다. 공항에서 골프장까지 가는 시간이 지루했던지 손님들은 나에게 이곳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대답을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쉬는 날에 직접 돌아다녀보면서 어느덧 버스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면서 큐슈에 있는 한국의 유적지에 대해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살던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도 한국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등산은 아주 싫어한다. 굳이 걷고 싶으면 근처의 공원에서 걸으면 될 것이고, 전망이 보고 싶으면 도쿄 스카이트리 같은 곳이나, 아니면 케이블카가 있는 산에 가서 편안하게 보고 오면 되지, 왜 힘들게 산에 올라가서 정상 잠깐 밟아보고 또 힘들게 내려와야 하는 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미야자키 회사를 그만두고 후쿠오카에 올라온 나는, 지금은 유메타운 근처에 살고 있는데, 회사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갈 거리에 있음에도 항상 차로 다닌다. 심지어 유메타운에 시장 보러 갈 때도, 걸어가면 1분도 안 걸리는데, 걸어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로 다닐 정도다.(그 덕(?)에 일본에 와서 체중이 20kg 넘게 늘어난 것일까.)

한 번씩 한국에 가면,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동네 뒷산에 등산을 가자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갖 핑계거리를 만들어 안 간다고 하고, 어김없이 한바탕 전쟁이 일어난다. 자식새끼 달랑 하나 있는데 애지중지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아버지의 속사포 랩을 무한 반복 라이브로 들어야 하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나도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다.(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도 구보나 등산 따위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고! 물론 일이 바빠서 그랬지만.)

그래서였을까. 후쿠오카의 아이노시마, 사가의 요시노가리, 나고야성, 카라츠성, 아리타, 미야자키의 백제마을, 가고시마의 심수관가 등 웬만한 한국과 관련된 지역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 가 봤는데, 정작 동네 뒷산이었던 에비노 고원 위의 한국악(카라쿠니타케, 韓国岳)은 미야자키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해발 1,200m의 에비노 고원까지는 에비노 스카이라인 도로를 따라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이 가 봤지만, 거기서 500m만 걸어서 올라가면 한국악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데, 여름에는 덥다는 핑계로, 겨울에는 춥다는 핑계로, 날씨가 좋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한가한 날에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손님들의 동행 제의를 거절했다.

그랬던 내가 한국악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계기는, 어느 날, 회사 동료에게 “한국악 정상에 오르면 한국이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한국악에 가보지 못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늘 바빴고, 쉬는 날에는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새 여름이 되고, 그러다가 어느 새 겨울이 되어버렸다. 한 번은 꼭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이제껏 내가 하던 핑계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후쿠오카에 올라와서 얼마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애당초 회사를 그만 둔 이유였던 대학원 진학은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고, 그러다가 새 직장을 찾게 되었는데 전혀 경험이 없던 교육 분야의 일이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으며, 때 아닌 향수병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던 2011년 가을, “한국악 정상에 오르면 한국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하기 위해 삶은 달걀 두 개와 물 한 병만 싸 들고 미야자키에 내려갔다.

9월이라 그런지 후쿠오카도 미야자키도 아직은 더운 날씨였다. 에비노 고원에 올라오니 조금은 시원해지는 느낌이라 기분 좋았다. 12시 정각, 한국악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였다. 늘 지나다니기만 했는데, 오늘 드디어 여기를 오르는구나. 하지만, 그런 들뜬 기분은 30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내가 왜 쉬는 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특히, 5아이메(5合目)까지 오르는데 진짜 죽을 맛이었다.

등산로는 있었지만, 산세가 험하기도 하고, 등산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10분 걷고 10분 쉬고, 또 10분 걷고 10분 쉬기를 반복했다. 4아이메 쯤에 그냥 포기하고 내려가려는데, 하필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 나 그냥 다시 내려갈까 싶다고 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더니, 예전에 자주 가던 소고기 식당 예약해 놓을 테니까 정상까지 갔다가 온천 한 번 하고 6시까지 식당으로 오란다.

아이메를 지나니 경사도 완만해지고, 가끔 내리막길도 있어 한결 걷기가 편해졌다. 정상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보일듯하면서 보이지 않고, 닿을듯하면서 닿지 않는, 꼭 여자친구와 ‘밀당’하는 느낌이랄까?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일단 배가 고파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아서 달걀부터 먹고, 그때서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안개 때문에 한국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이 보이지 않아 억울하다는 생각 따위 들지 않을 정도로 정상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모두 담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어도 한국은 보이지 않았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한국까지 못해도 400km 이상 떨어져 있으니까. 대마도까지도 300km 이상 떨어져 있어 초능력 눈을 가지지 않는 이상 한국악 정상에서 한국을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이름이 왜 한국악이며, 맑은 날씨에 한국이 보인다고 했을까? 나중에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곳에 백제의 유민들이 살았다는 설이 있는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던 그들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던 이곳에 올라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하였다.

정상에서 약 한 시간 동안 머물렀을까. 땀이 식어서 그런지 한기가 느껴져서 얼른 내려가서 온천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그러더니, 내려갈 때 한 열 번은 더 넘어진 것 같았다. 아오, 내가 다시는 등산 하나 봐라.

친구는 자고 가라 그랬지만, 물 한 병, 삶은 달걀 두 개만 달랑 챙겨온 데다, 늘 차에 싣고 다니던 갈아입을 옷도 그 날따라 트렁크에 없고 그래서 송년회 때 자고 가겠다 하고,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해 준 백제의 유민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일본에 끌려왔던, 그리고 광복을 맞은 후에도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의 아픔을 함께 떠올리게 하였다. 나의 한국악 여행은, 정상에서 한국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향수병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운동부족이었던 내게 충분한 운동이 되었으며, 고향에 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재일동포의 아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덧붙여, 나에게 처음 한국악에 오르고 싶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회사 동료에게 그 해 겨울, 송년회 때 만나서 왜 나한테 한국악 정상에 가면 한국이 보인다고 거짓말 했냐고 따졌더니, 이곳에서 한국까지 거리가 얼만데 설마 그게 보이겠냐며 오히려 핀잔을 들었다. 운동하는 것을 공부보다 싫어하는 내가 설마 한국악에 오를 줄 몰랐다는 놀림과 함께. 두고 보자. 내가 언젠가는 “남산타워에서 평양이 보인다” 등으로 되갚아 주겠어.